
[ 페이퍼로드, 지적상상의 길 ] 전시회와 더불어 개최된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전시회가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의 저명한 편집디자이너/북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라면,
심포지엄은 한, 중, 일 지식인들의 '종이'에 대한 생각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심포지엄은 총3부로 구성되었다.
각 부별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 패널로 오기에는 너무나 저명한 분들이 오셔서 놀라웠다.
각 부의 발제와 내용을 짧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제1부 紙 - 知
발제 '페이퍼로드에서 디지로그로' _ 이어령
토론 이어령ㅣ마츠오카 세이고ㅣ정병규 모듀레이터 권혁수
역시 이어령!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거침없고, 재미있고, 강약조절을 잘 하는 말솜씨에 매료되어 버렸다.
40분이라는 발제시간이 너무나 짧아 아쉬움마저 들 정도였다.
발제의 중심 내용은, 논어 구절인 [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知者(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이었다.
처음 언어를 문자화하고, 기록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종이는 知之者(아는 사람)의 종이이다.
반면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날리고, 종이를 북북 찢으며 노는 사람들에게 종이는 好之者(좋아하는 사람)의 종이.
知之者의 종이는 단순히 기록만 할 뿐이었고, 好之者로 넘어오면서 종이는 하나의 도구, 부드러운 존재가 된다.
이윽고 樂之者(즐기는 사람)가 되면 종이는 휴지처럼 쓰고 버리는 단계가 된다. 즉,
종이에 집착하지 않고 유용히 사용하되 쓴 다음에는 깨끗이 버리는 '수단'으로서의 종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이의 존재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에 집중해야만
비로소 종이를 즐겨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빈 여백을 메꾸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이로 만들고, 종이 자체를 쓰는 수단으로 여기는 樂之者로 거듭나야 한다.
종이의 역사를 언급하고, 편집디자인 이야기를 하면서
논어의 구절을 언급한 의도가 있었다. 그만큼 동아시아적인 디자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디자인이 서양에서 출발했고, 정수 또한 서양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시작한 종이의 역사, 종이에서 비롯된 동양의 문화와 생각이 어쩌면 숨은 보석일 지 모른다.
종이를 위한 기록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종이.
그래서 1부는 紙(종이)에서 知(아는 것)으로 넘어가야 함을 말한다.
종이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마음가짐이 다시 새겨져야 하며,
그 길이 곧 디지털 시대에 종이 매체를 사용하는 바람직한 길로 연결된다.
제2부 像 - 想
발제 '상상 아시아, 상생 아시아' _ 마츠오카 세이고
토론 마츠오카 세이고ㅣ위징런ㅣ나카가키 노부오 모듀레이터 김경균
'편집'과 '디자인'은 함께 가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스키타이 문명부터 시작해 이어지는 문화가 다수 있다.
실크로드, 누들로드, 페이퍼로드. 모든 '길'들은 서로 다르고 개성이 넘치는 동아시아 국가를 연결하고, 문화를 섞었다.
현재 간서체, 한글, 카나(히라가나/가타카나)라는 세 개의 변형된 글자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본바탕에는 한자가 있고, 한자는 동아시아의 문자문화를, 종이문화를 연결한다.
그렇기때문에 동아시아적 디자인을 상상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곧 아시아 문화가 함께 가는 길을 새로 닦음을 의미할 지 모른다.
서양의 사각형은 단순한 구획의 개념이다. 서양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인 아프리카를 갈라놓은 선들을 보라.
지역, 환경, 문화, 사람에 대한 그 어떤 생각이나 배려 없는 선긋기이다.
그러나 동양의 사각형은 구역을 정의하는 개념이다.
구역은 구획과 다르다고 마츠오카 세이고 씨는 말한다. 구획이 선긋기이고 나누는 것이라면,
구역을 정하는 일은 각 개별의 존재를 모으고, 담아내는 일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종이(-사각형)에 대한 생각도 달리 한다.
동양에서 종이는 모든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다. 모든 정보는 종이로 돌아가紙の中に取り戻す 재조합된다.
디자인은 이렇게 돌아오는 정보들을 '종이' 공간 안에 정착시키는 일이다.
디자인과 편집이 연결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맥락 때문이다.
마츠오카 세이고 씨는 정보가 범람하는 지식정보시대에서는 이러한 편집적 디자인이 중요하고,
나아가 이미지를 재정립하고 정렬하는 Imagement(Image+management)가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중국의 그 유명한*.* 뤼징런 선생님이 토론자로 참여해 한 말이 뇌리에 박혔다.
"디자인은 화장이 아니다. 상상의, 창작의 결과이다.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회화가 아니라 편집공학이다."
겉보기에 화려한 치장에만 집착하는 다수의 디자인 관련 학생들이 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싶다.
제3부 圖 - 道
발제 '디자인 타오' _ 칸타이킁
토론 칸타이킁ㅣ하라 켄야ㅣ김경선 모듀레이터 이나미
제3부를 이끈 칸타이킁은 도道를 중심으로, 도가 사상과 관련한 이야기부터 풀어나갔다.
도道를 중국어로 말했을 때 '타오'라 한단다.
도가의 사상은 한국 사람에게도 무척 낯익은 이론이다. 태극과 건곤감이가 모두 도가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
도가에서 분류하는 양과 음, 거기서 계속 분화되는 사성, 팔괘, 64괘...끊임없이 세분화되는 이론의 바탕에는
양과 음이 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도道가 있다. 도가에서 주창하는 이론을 한 마디로 말하면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즉, 길은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즉, 길에서 나누어진 양과 음이 서로 어우러져 만물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의 그림이 만물이 되고, 만물은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도가의 이론을 말하며 칸타이킁 씨는 결국 디자인이 가져야 할 관점에 대해 논한다.
도가의 사상은 곧 만물이 평등함을 말한다. 모든 사물이 사람과 동등하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좋은 디자인이란 사람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함께 좋아지는 것이라는 게 칸타이킁 씨의 생각이었다.
굳이 새로운 형태의 어떤 것을 만들고, 그걸 만드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나 자원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으로 디자인을 하는 것, 내 주변것들에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서양의 디자인 이론이 말하는 것은 대부분 신체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이론에서 간과하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현상을 어떻게 느낄 것이냐는 일이다.
현상과 맞닥뜨렸을 때 신체의 느낌, 쾌락, 감정 등이 문화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내부적 감각을 통한 디자인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로 인해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만물이 곧 하나로 이어지는 도가의 사상을 계승하는 디자인이 아닐까.
너무나 깊고 방대한 디자인 사상을 접한 날이었다. *.*정리하는데도 머리가 핑핑핑~
중요한 것은, 넘치는 정보를 어떻게 편집하고 정리할 것인지.
그 정리하고 다듬는 디자인의 관점은 무엇을 향해 있을지의 문제로 모아진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떻게 펼쳐질 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배운 가치와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고 가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된 경험이었다.








